[기자수첩]'기사회생' 여가부, 이제는 선택과 집중의 시간

최근 통화한 여성계 인사가 여성가족부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여가부의 위축된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발언이다.
지난해 11월, '폐지 피하고 싶긴 한가…여성가족부 향한 유감'이라는 제목의 기자수첩을 썼다. 당시 여가부는 윤 전 정권의 폐지 기조 아래 존재감과 역할이 미약하다는 여론의 질타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6개월 넘게 시간이 흐른 지금, 여가부는 기사회생을 넘어 반등의 기회를 마주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21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됐기 때문. 이 대통령은 공약을 통해 여가부를 '성평등가족부'로 확대 개편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따라 부처 안팎으로 기대감이 증폭되고 있다. 전직 여가부 장관, 더불어민주당 소속 여성가족위원 등은 부처 이름을 '성평등가족청소년부'로 바꾸고 규모를 약 1.5배 늘리는 개편 방안 제안문을 마련했다. 제안문은 조직 개편을 이끌고 있는 국정기획위원회로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면, 그간 여가부 확대를 고대했던 관계자들의 '들뜬' 마음이 엿보인다. 저출생 정책, 성평등 노동정책 그리고 복지부 및 교육부에 분산된 아동 정책을 모두 끌어안겠다는 포부가 담겼다. 여성, 청소년, 가족 부문이라면 모두 지휘봉을 잡겠다는 셈이다.
부처 확대에 따라 권한, 예산, 인력 등이 충원된다면 이행 불가능할 정도의 안은 아니다. 다만 현재 여가부의 위상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포털에 '여성가족부'라고 검색어를 입력하면 '여성가족부 하는 일'이 자동으로 뜬다.
예산도 부처 중 최하위권이다. 올해 예산은 1조8163억원으로 정부 예산의 0.27%에 불과하다. 또 전 정부의 폐지 기조에 따라 장관 자리도 1년 넘게 공석이다.
대선 후보가 여가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을 정도로 입지도 불안정한 상태다. 일부 남성 유권자들은 존재 자체가 젠더 갈등의 원인이라며 존치에 의구심을 표하기도 한다.
여가부 관련 사업 및 법제도를 담당하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가 상설 상임위 중 유일한 '겸임' 상임위라는 점도 문제다. 김한규 여가위 더불어민주당 간사는 "잠시 시간 내서 하는 상임위"라고 표현했다.
그런 가운데 새 정부는 여가부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할 것으로 보인다. 예산과 인력은 자연스레 따라올 전망이다. 덩치 불리기보단 기존 사업에 힘을 실어주는 방향이 필요한 시점이다. '짬뽕' 부처보단 선택과 집중으로 그간 추진에 난항을 겪었던 부분에 눈을 돌려야 할 때다.
특히 여성폭력 대응 문제가 그렇다. 지난해 말 발표된 범부처 딥페이크 대응 강화 방안에서 여가부는 디지털성범죄 대응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하게 됐다.
그런데 이대로라면 명목상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디성센터)의 예산과 인력이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가위와 여가부 등은 인력난 등을 해소하기 위해 올해 디지털성범죄 대응 예산으로 81억원 증액을 요구했으나 무산됐다. 이후 올해 1차 추가경정예산(추경)도 11억원에 그쳤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나온 2차 추경안엔 여가부 예산이 빠졌다.
명칭은 '성평등가족부' 등으로 바뀔 것으로 보이나 부처의 정체성이었던 여성과 청소년이 희석되는 일도 없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처음으로 내놓은 10대 공약엔 여성 공약이 빠져 있었다.
'여성 공약 실종'이라는 지적이 제기되자 최종 공약엔 포함됐지만, 여성계의 숙원이자 여성폭력 관련 최대 쟁점 중 하나인 비동의강간죄 도입 등은 찾아볼 수 없었다.
부처 확대 소식에 들뜬 마음을 가라앉힐 때다. 어떤 일을 하고 있고, 할 것인지 국민들에게 각인시켜야 할 때다. 포털 검색어에 '여성가족부 하는 일'이 더 이상 뜨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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